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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해양수산부 공식블로그 - [전문가PICK] 세 개의 해산이 독도를 지킨다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19-08-19

독도 주변 해저에는 독도와 유사한 기원과 형태를 갖는 형제봉들이 주변에서 독도를 호위하듯이 줄지어 있습니다.

이런 해산들은 정밀한 해양과학조사를 통해서 존재가 밝혀졌으며, 2005년 국가 지명위원회를 통해서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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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와 울릉도 사이 깊은 수로 중앙에 약 1,700미터나 뾰족하게 올라온 해산은 안용복해산,

독도의 동쪽 해저 200미터 아래에 줄지어 있는 해산은 각각 심흥택해산, 이사부해산으로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동쪽에서 일본과 가장 가깝게 접하고 있는 이사부해산은 마치 최전선의 첨병처럼 영토 수호자로서 늠름한 위용을 자랑합니다.

이 해산들의 이름에는 각각 독도수호의 중요한 역사적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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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부는 《삼국사기》에 언급된 인물입니다. 삼국사기에는 ‘지증왕 13년(512년) 신라 장군 이사부가 우산국을 도모하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 사료는 이사부가 우산국을 복속시켜 신라의 영토에 편입시킨 역사적 사실을 전합니다.

이 우산국이 현재의 울릉도와 독도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울릉도와 독도는 이미 6세기 초부터 우리 영토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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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사부가 나무사자를 이용해 우산국의 항복을 받는 내용이 담긴《삼국사기》 중 <이사부열전>

이사부의 출생연대는 알려지지 않았으며, 내물왕의 4세손으로 진골귀족 출신입니다.

일찍부터 무예를 익혀 변경의 관장이 되었고, 505년에는 실직주의 군주가 되었습니다.

실직은 오늘날의 삼척을 말합니다. 삼척은 신라의 동해안 진출을 위한 전진기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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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장군 이사부의 국가표준영정, 사진 삼척시립박물관

512년에 이사부는 하슬라강릉의 군주가 되었고, 동해로 진출해 우산국을 복속시켰습니다.

우리 역사 최초로 동해 해양개척에 나섰던 것입니다.

그리고 병부령이 되어 대가야를 정복하는 등 신라의 ‘망라사방’ 정책을 실현해 나갔습니다.

또한 거칠부로 하여금 ‘국사’를 편찬하게 했습니다.

이사부는 동해안 진출과 우산국 복속, 가야 정복을 주도했고,

국사를 편찬한 인물로 ‘덕업일신망라사방(業日新網羅四方: 덕을 매일 새롭게 하고, 그것을 사방에 망라한다)’이라는 신라의 국가비전을 실천에 옮긴 인물입니다.

그 결과 신라는 고구려·백제·신라 삼국 가운데 후진의 열세를 극복하고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면서 삼국통일의 초석을 다져갔습니다.

이런 점에서 이사부는 한국고대사의 손꼽히는 영웅입니다. 나아가 동해의 이사부, 남해의 이순신, 서해의 장보고와 함께 한국 해양의 3대 개척자로 추앙받아 마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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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릉도 안용복기념관에 있는 안용복 동상, 사진 독도박물관

안용복은 1693년과 1696년, 두 차례나 일본에 가서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 땅임을 주장한 인물입니다.

안용복은 부산 동래 출신으로 경상좌수영의 능로군으로 근무했고, 왜관을 출입하면서 일본말을 익혔습니다.

1693년 3월, 안용복은 어부 40여 명과 울릉도에서 어로작업을 하다가 일본 오키섬의 어부들에게 납치되어 도토리 번에 가서 재판을 받은 뒤,

무죄가 인정되어 나가사키를 거쳐 조선에 돌아왔습니다. 부산으로 돌아온 안용복은 허가 없이 일본에 다녀온 죄로 약 2년간 옥살이를 하기도 했습니다.

이때부터 조선과 쓰시마 사이에서는 울릉도와 독도를 두고, 서로 자국의 영토라고 주장하는 소위 ‘울릉도쟁계’가 발생했습니다.

쓰시마의 보고를 받은 막부에서는 2년에 걸쳐 조사와 논쟁을 거듭한 끝에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땅임을 인정하고,

1696년 일본인은 울릉도에 가서는 안 된다는 ‘울릉도 도해금지령’을 내렸습니다.

2년간 옥살이를 마친 뒤에도 안용복은 울릉도와 독도를 지키는 데 힘을 쏟았습니다.

일행 10명과 함께 1696년 3월 울산에서 출발해 울릉도에 도착한 안용복은 울릉도에 침입한 일본인을 쫓아냈습니다.

그들이 독도로 가자 뒤쫓아서 몰아낸 뒤 계속 추적해 다시 오키섬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오키섬에서 일본 관리들에게 조사를 받은 안용복은 이 과정에서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주장하며 도토리 번주에 보고해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이후 안용복 일행은 추방되어 강원도 양양으로 돌아왔습니다. 안용복은 비변사에서 조사를 받은 뒤 사형을 선고받았지만,

일본에 건너가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 땅임을 주장한 공과 쓰시마의 농간을 밝힌 공이 인정되어 유배형에 처해졌습니다. 이후의 행적은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2007년 일본 오키섬에서 안용복이 두 번째로 일본에 갔을 때 조사받았던 문서원록구병자년 조선주착안 일권지각서가 발견되었습니다.

이 문서는 현재 안용복을 조사했던 관리 집안인 무라카미 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이 문서를 통해 안용복이 일본에 가게 된 경위와 목적, 항해 루트와 일정, 오키섬에 도착한 뒤 받은 조사 내용이 소상하게 밝혀졌습니다.

문서의 뒷부분에 ‘강원도에 울릉도와 독도가 속해 있다’는 기록이 첨부되어 있었습니다.

그 결과 종래 안용복의 일본 방문 기록이 ‘허구와 과장으로 가득 찼으며, 안용복이 꾸며낸 거짓’이라고 주장했던 일부 일본학자의 주장을 뒤집고

《숙종실록》 속 안용복 행적이 사실임이 입증되었습니다.

안용복에 의해 조선 후기 영유권분쟁이 일단락되었으며 이후 조선에서는 울릉도 수토정책(조선 후기 울릉도에 거주를 금하고 관리를 파견해 주기적으로 순찰하도록 한 정책)을

실시해 울릉도와 독도의 관리를 지속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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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용복이 2차 도일 때 오키섬에서 일본 관리에게 보상받은 내용을 기록한 일본문서.

심흥택은 1855년 서울에서 출생한 대한제국의 관리로 1903년부터 약 3년간 울도 군수로 재직했습니다.

대한제국에서는 울릉도 인구가 2,000명에 이르자 1900년 10월, 칙령 제41호를 반포해 울릉도를 울도군으로 승격시키고 군수를 파견해 울릉도와 독도를 관리했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1905년 1월, 러일전쟁을 준비하면서 독도에 일본 해군의 망루를 세우고,

무선전신을 설치하기 위해 강제로 독도를 무주지(어떤 국가도 영유권을 주장하지 않는 땅)로 규정하고는 일본 시마네 현에 편입시켰습니다.

당시 울도 군수였던 심흥택은 1906년 3월, 울릉도를 찾아온 시마네 현 조사단 일행이 독도를 자국 영토로 편입했기 때문에 그 섬을 둘러보러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심흥택은 이를 강원도 관찰사에게 보고했습니다.

심흥택의 보고에 의해 독도가 일본 영토로 편입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참정대신 박제순은 ‘독도가 일본 영토가 되었다는 사실은 근거가 전혀 없는 것이니

섬의 형편과 일본인의 행동을 잘 살펴 보고하라’는 지령을 내렸습니다. 당시 이 사실이 ‘대한매일신보’와 ‘황성신문’에 보도되어 전 국민을 분노하게 만들었습니다.

심흥택 보고서를 통해 일본의 독도 편입이 대한제국에 사전 협의나 사후 통고 없이 비밀리에 불법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난 것입니다.

이 보고서는 독도라는 명칭이 처음 공식적으로 사용되었다는 점에서도 역사적인 의미를 갖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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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부터 조선을 거쳐 일제강점기까지 이사부, 안용복, 심흥택의 역사적 행적 속에 우리나라가 동해를 개척하고,

소중한 우리 영토 독도를 지금까지 지켜오는 데 기울인 노력들이 고스란히 묻어납니다.

독도 주변의 해산에 붙여진 이 이름들에는 과거에 이어 미래에도 독도를 우리 영토로 굳건히 하고자 하는 염원이 담겨 있습니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박찬홍

동해연구소장/독도전문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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