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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경북매일 - 시인 이병철의 경북 바닷길 537km, 그 맛과 멋 - (4) 고래들이 헤엄쳐와 놀다가던 그 곳, 고래불…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19-07-09

기사링크 : http://www.kbmaeil.com/news/articleView.html?idxno=820751


시인 이병철의 경북 바닷길 537km, 그 맛과 멋
④ 영덕 바다는 사랑을 위하여 푸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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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른 파도와 흰 모래가 아름다운 고래불해수욕장.

누군가 내게 어떤 색을 가장 좋아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파란색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파란색 중에서도 어떤 파란색이냐고 다시 묻는다면 바다의 파란색이라고 할 것이다. 세상의 그 많은 바다 중에서 어느 바다가 그토록 아름다운 파란색을 지녔는지 궁금해 한다면 나는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영덕 바다에 가보라고 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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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불서 축산항, 대게 공원으로 이어지는 해파랑길 ‘블루로드’
풍력발전단지의 푸른 바람과 함께하는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
감동으로 채운 천재 문장가 포은 이색·의병장 신돌석 장군의 자취
특제 초장에 비벼낸 미주구리회는 강구항이 내어준 귀한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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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래불해수욕장 입구에 설치된 고래불 조형물.

영덕, 이라고 소리 내 발음하면 서늘한 기운이 느껴지면서 체온이 조금 내려간다. 한 여름 무더위와 열대야로 고생할 때 써먹기 좋은 방법이다. 나는 종종 영덕으로 상상의 피서(避暑)를 떠나곤 한다. 영덕, 이라고 한 번 더 발음하면 푸른 향기와 함께 파도 소리가 밀려온다. 언제나 상상이 현실보다 풍요롭지만, 영덕에서는 전세가 역전된다. 무엇을 상상해도 그 이상이다. 상상 속 푸른 향기는 바다와 마주하는 순간 구체적으로 분명해진다. 영덕 바다에서는 시원한 쿨워터 향수의 내음이 난다. 박하 성분이 들어간 샴푸 향기가 나기도 한다. 파도에서는 쌀 씻어 안치는 소리, 연극이 끝난 후의 박수소리가 들린다. 냉장고에서 갓 꺼낸 청포도의 온도와 쪽빛 실크 블라우스의 감촉을 지닌 영덕 바다에서 나는 죄 지은 것도 없이 죄인이 된다. 수평선을 훔친 내 눈이 푸른 수의(囚衣)를 입고 푸르디푸른 감옥에 갇힐 때, 벗어날 수도 없고 벗어나기도 싫은 자발적 유배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영덕에 가면 그 푸름에 그냥 눌러앉고 싶어진다.

망망대해를 자유롭게 헤엄치는 고래의 꿈을 꿨다. 푸른 바다로 뛰어들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내 불완전한 욕망이 꿈에서 고래를 통해 이루어진 모양이다. ‘고래’는 오랫동안 희망의 메타포가 되어 왔다. 어민들에겐 지금도 ‘바다의 로또’로 불린다. 송창식은 노래했다. “간밤에 꾸었던 꿈의 세계는 아침에 일어나면 잊혀지지만 그래도 생각나는 내 꿈 하나는 조그만 예쁜 고래 한 마리. 자 떠나자, 동해 바다로. 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 잡으러”(‘고래 사냥’) 가자고. 1975년의 ‘고래’는 잡으려면 잡힐 것 같은 꿈이었다. 피땀과 눈물의 바다 위에 “잘 살아보자”는 뱃고동 소리가 메아리치면, ‘중동 건설 붐’이라든가 ‘수출 100억불’ 같은 신화들이 커다란 고래가 되어 잡혀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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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 기념물 제87호 신돌석 장군 생가.

그로부터 30년 후, 바비킴은 다시 노래했다. “파란 바다 저 끝 어딘가 사랑을 찾아서 하얀 꼬릴 세워 길 떠나는 나는 바다의 큰 고래. 이렇게 너를 찾아서 계속 헤매고 있나. 저 하얀 파도는 내 마음을 다시 흔들어 너를 사랑하게 해”(‘고래의 꿈’)라고. IMF라는 풍랑이 그친 바다에 ‘자수성가’라든가 ‘내 집 마련’이라든가 하는 고래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2004년의 ‘고래’는 뜬구름 같은 낭만과 사랑의 은유, 거대한 신화에서 작고 앙증맞은 동화가 되었다.

그리고 2019년, 두 고등학생 래퍼(강민수, 이진우)는 국어 교과서에 수록된 정호승의 시 ‘고래를 위하여’를 랩으로 개사해 신나게 외쳤다. “넌 내 바다에 놀러와 매일 초음파를 보내. 별이 나를 보며 hello. 아무쪼록 필요해 더 많은 고래… 넌 마음이 너무 탁해. 너를 괴롭히는 시선들을 들춰놔 봐. I don‘t give up! 꿈을 찾아 떠나가 버려”라고. 오늘날 젊은 세대에게 ‘고래’는 타인의 시선이나 기성세대의 질서가 만든 ‘유리 수족관’을 벗어나 넓은 바다로 “꿈을 찾아 떠나”는 주체적 자아를 상징한다.

강산이 네 번 반이나 바뀌는 동안 ‘고래’도 영덕도 다 변했다. 사실 영덕은 고래와 큰 관련이 없다. 물론 영덕에서도 저인망 어선에 밍크고래가 혼획되는 일이 가끔 있지만 과거 우리나라의 고래잡이는 울산 장생포와 포항 구룡포에서 주로 이뤄졌다. 장생포에는 고래문화마을과 고래박물관이 있고, 매년 고래축제가 열린다. 그럼에도 영덕 기행문을 고래 이야기로 연 것은 병곡면의 고래불 해수욕장 때문이다. 희고 고운 모래사장이 이십 리나 펼쳐진 그 해안에 대해 말하기 위해 송창식과 바비킴, 고등래퍼의 고래 노래를 들었다.
 
죽변에서부터 봉평, 망양, 후포 해변을 지나 고래불로 가는 길, 포크에서 레게 그리고 힙합으로 장르가 변하는 사이 당진영덕고속도로가 개통하면서 영덕은 ‘교통 오지’의 오명을 벗었다. 송창식이 ‘고래 사냥’을 노래한 때나 지금이나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 봐도 가슴에는 하나 가득 슬픔뿐”인 청춘, 다만 이제는 “삼등삼등 완행열차” 대신 KTX를 타고 서울에서 포항까지 2시간 30분, 포항역에서 다시 기차로 30분을 달리면 영덕에 닿을 수 있다. 영덕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예나 지금이나 대게지만, 먼 옛날 병곡 바다엔 대게만큼이나 고래가 우글거렸다.

고래불이라는 지명은 고려 말의 대학자 목은 이색(李穡)에 의해 붙여졌다. 어린 시절 산에 올랐다가 바다에서 고래들이 흰 물줄기를 뿜으며 뛰노는 모습을 보고 “고래불”이라고 외쳤다 한다. ‘불’은 ‘뻘’의 옛말로 고래불은 고래뻘, 즉 고래가 드나드는 해안이라는 뜻이다. 지금은 고래가 놀지 않는 해안, 하지만 내 눈 앞에 펼쳐진 고래불 바다는 언젠가 돌아올 범고래, 혹등고래, 귀신고래를 향해 싱그러운 손짓을 하고 있었다. 저 수평선은 푸른색의 고향일까, 물결이 끊임없이 새 파랑을 새파랗게 새파랗게 해변으로 밀어 보내면, 백설탕처럼 고운 모래가 파랑을 사랑으로 바꿔 해변을 나란히 걷는 연인의 발뒤꿈치를 달콤하게 적셨다.

고래들이 헤엄쳐 와 넉넉히 놀다 가던 고래불에서 사람들은 모두 고래 분수처럼 시원한 웃음을 공중으로 쏘아 올렸다. 그 웃음이 바다를 더 파랗게 물들였다. 연인들은 해변을 걷고, 걷다가 모래 위에 하트를 그리거나 서로의 이름을 적고는 파도가 그걸 지울 때마다 안타까워했다. 그 모습을 부러워하며 해수욕장을 나서자 소나무 숲에 조성된 고래불국민야영장에는 형형색색 텐트들이 만화 ‘스머프’처럼 아기자기한 동화 마을을 이루고 있었다. 어른들은 텐트 앞에 모여 앉아 바비큐 파티를 즐기고, 물놀이장에선 아이들의 물장구 사이사이로 무지개가 반짝였다. 연인과 가족, 친구들이 그려내는 여러 사랑의 풍경들이 고래불 해수욕장의 얼굴이다. 어느 책 제목을 빌면, 고래불에서 우리는 ‘바다의 얼굴, 사랑의 얼굴’(김얀)을 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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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주구리회를 내 오시는 청송식당 주인 할머니.

영덕군이 동해안을 따라 고래불에서부터 축산항, 대게 공원으로 이어진 해파랑길을 ‘블루로드’라고 이름 붙인 이유를 알겠다. 고래불에서 나와 대탄리의 ‘해맞이공원’으로 가는 내내 차창 너머로 푸른 그림들이 늘어선 화랑이 열린다. 자연이라는 거장의 작품들, 해맞이공원에서 바다를 바라보았다. 풍력발전단지의 거대한 풍차가 푸른 바람을 일으킬 때마다 몸이 떠오르고 등에서 날개가 돋아나는 것만 같았다. 영덕 바다의 푸른빛에는 보는 이로 하여금 수평선 끝까지 날아가고 싶게 만드는 아득한 신비감과 황홀감이 있다. 그보다 더 아름다운 드라이브 코스는 어디에도 없다.

푸른 바다는 넓고 높은 사람을 낳아 기른다. 영덕은 태백산맥 줄기를 따라 동쪽으로 갈수록 점차 낮아져 동해와 닿는다. 북동쪽에는 태백산맥의 분수령인 칠보산과 등운산이 솟아 있고,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어깨에 바다를 짊어지며 동해를 향해 달려가는 지형이다. 서부산지에서 발원해 동해로 흘러드는 오십천과 송천 등 영덕 땅을 흐르는 물줄기들은 영해평야와 영덕평야, 금호평야를 이룬다. 이 천혜의 자연 속에서 목은 이색과 신돌석 의병장이 태어났다. 두 분 다 영덕 출신으로 영해에는 목은 이색 기념관이 있고, 축산에는 신돌석 장군 유적지 및 생가가 있다. 시를 6천 수나 짓고 “붓을 잡으면 곧 써 나가기를 마치 바람 불고 물 흐르듯 하여 조금도 막힘이 없었다”던 천재 문장가와 일본군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던 ‘태백산 호랑이’의 자취와 숨결을 느껴보는 것 또한 영덕 여행에서만 얻을 수 있는 감동이다.

신돌석 장군 유적지에 바윗돌 들기 체험장이 있는데, 제일 큰 돌을 들어 올린다고 객기를 부렸더니 허리가 뻐근했다. 휴식이 필요한 시간, 다행히 강구항으로 가는 길에 바다를 보며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아름다운 카페가 있다. SNS에서 사진 찍기 좋은 곳, 연인과 함께 데이트하기 좋은 핫플레이스로 소문난 집이다. 노란색과 주황색으로 칠한 외관이 카리브해의 카페를 연상시키는 ‘카페 봄’에는 통유리로 된 포토존과 야외 데크가 있어 바다를 가까이서 만끽하며 커피와 디저트를 즐기기 좋다. 이곳 카페에 오면, 젊은 연인들은 셀카봉을 들고 사진을 찍거나 푸른 바다와 함께 보석처럼 빛나는 애인의 얼굴을 바라보느라 커피잔의 얼음이 녹는 줄도 모르고, 어느 노총각은 그 광경을 지켜보며 속에서 천불이 나 아이스커피를 원샷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이미 여러 사람들이 봤다고 한다.

헛헛한 속을 달래려 강구항의 한 노포(老鋪)를 찾았다. 청송식당은 1976년부터 장사를 했다. ‘할배 방앗간’과 ‘머리 만들기 미용실’, ‘마법의 빵’ 등 주변 가게들과 끼리끼리 정겹고 정다운 강구시장 안에 있다. 식당이 아니라 오래된 가정집을 연상케 하는 모습, 허름한 마당을 지나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서면 기억 속에 자리한 냄새가 풍기는데 그 옛날 시골 할머니 집에 갔을 때 나던 따뜻한 내음이다. 이 집은 미주구리회 전문이다. 경북 지역에서 물가자미를 미주구리라고 부르는데, 뼈회로 잘게 썬 것을 양념초장에 무쳐 먹는다. 주인 할머니께서 미주구리회 한 접시와 특제 양념초장을 내오셨다. 초장을 회에 몇 국자 부어 젓가락으로 부지런히 무쳤다. 한 젓가락 크게 집어 입안에 들이니 뼈회의 고소함과 양념초장의 새콤달콤함, 그리고 매운 고추의 알싸함, 쪽파와 양파의 아삭함이 한 번에 느껴졌다. 반쯤 먹고 나머지 반은 밥에 비벼 회덮밥으로 먹었다. 밥을 주문하니 “우리 집 반찬 좀 먹어보라”며 김치와 젓갈, 멸치조림, 감자 볶은 것, 된장국을 내어주셨다.

카드 결제가 되지 않아 새마을금고에 가 현금을 인출하고 왔더니 주인 할머니는 거동이 불편한 할아버지를 부축하며 마른 등을 쓰다듬고 계셨다. 아까 보았던 고래불의 푸른 파도가 두 눈 가득 차오르는 순간, 시인은 “푸른 바다에 고래가 없으면 푸른 바다가 아니지… 푸른 바다가 고래를 위하여 푸르다는 걸 아직 모르는 사람은 아직 사랑을 모르지”(정호승, ‘고래를 위하여’)라고 노래했지만, 나는 확실히 알았다. 영덕 바다는 사랑을 위하여 푸르다는 것을.

출처 : 경북매일(http://www.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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