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여행의 시작>발전소가 들어오거나 부두가 지어지는 등 여러 해상사업이 시행되면 해당 구역에 있던 어업권은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렵습니다. 이런 경우 사업시행자들은 어업권이 사라지게 되면서 어민들이 입은 손실을 보상해야 합니다.
그런데, 법인 형태가 아닌 어촌계가 보유하고 있던 어업권이 사라지게 되는 경우 계원들끼리 보상금을 어떻게 나눠야 하는지가 상당히 문제됩니다. 특히 사라지는 어업권이 모든 계원 또는 대다수의 계원들이 행사하고 있던 것이 아니라 소수 계원들만 행사하던 경우에는 보상금을 실제 어업권을 행사하고 있던 계원들을 중심으로 분배할 것인지, 아니면 공평하게 모든 계원들이 나눠도 되는 것인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사건에서 A어촌계는 미역양식 어업권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이 미역양식 어업권은 실제로는 B 등(이하 B) 일부 계원들이 행사해오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미역양식장이 있던 곳에 하수처리장 공사가 시행돼 위 미역양식장이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렵게 되자, 사업시행자는 그 손실에 대한 보상금으로 A어촌계에 35억 원을 지급하였습니다.
이 35억 원 보상금의 분배 방식에 대해, 최초에 B는 실제로 미역양식을 했던 B가 80%, 나머지 계원들이 20%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나머지 계원들은 B가 20%, 나머지 계원들이 80%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당시 A어촌계원은 총 83명이었고, 미역양식 어업권을 실제 행사하던 계원인 B는 18명이었습니다). 이후 협의가 진행되면서, 다시 B가 65:35의 분배안을, 나머지 계원들이 50:50의 분배안을 각 주장하여 서로 차이를 좁히기는 하였으나 끝내 합의에는 이르지 못하였습니다.
결국 더 이상 합의에 따른 진행은 어렵다고 생각되자, A어촌계는 임시총회를 소집하여 표결을 하였고, 보상금을 계원 전원에게 균등하게 분배하는 것으로 결의를 하였습니다. 그러자, B는 A어촌계가 보상금에 대해 계원 전원에 균등하게 분배하기로 한 위 임시총회의 결의는 무효라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그러나 1심인 부산지방법원과 2심인 부산고등법원 모두 위 임시총회 결의가 유효하다고 판단하여 B의 패소를 선언하였습니다.
B는 결국 대법원에 상고를 제기하였는데 과연 대법원은 누구의 손을 들어주었을까요?
<쟁점>어업권의 소멸로 인한 손실보상금을 어업권 행사자와 비(非)행사자 사이에 균등하게 분배하기로 하는 어촌계의 총회결의가 어업권 행사자들에 대한 관계에서 현저하게 형평을 잃어 무효일까요?
<대법원의 판단- 대법원 2003. 6. 27. 선고 2002다68034 판결>어업권 행사자들과 비행사자들 간의 분배비율을 완전히 같게 함으로써, 어업권 행사자들이 비행사자들과 비교하여 부가적으로 더 갖고 있는 재산상 이익에 대한 보상 내지 배려를 전적으로 부정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나 합리적인 사유가 없는 이상 이 사건 결의의 내용은 어업권 행사자들에 대한 관계에서 현저하게 형평을 잃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심(부산고등법원)은 그 판시와 같은 이유를 들어 이 사건 결의가 현저하게 불공정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거기에는 채증법칙을 위배하여 사실을 오인하거나 어업권 소멸로 인한 보상금의 분배 또는 어촌계 총회 결의의 무효사유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고, 이는 판결에 영향을 미쳤음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ㆍ판단하도록 하기 위하여 원심법원에 환송한다.
<판결의 의의>우선 위 대법원 판결의 전제가 되는 법리를 살펴보겠습니다.
①법인 아닌 어촌계가 취득한 어업권은 계원의 소유가 아닌 어촌계의 총유(總有)이고, 그 어업권의 소멸로 인한 보상금도 어촌계의 총유에 속합니다. ②총유물인 손실보상금의 처분은 원칙적으로 계원총회의 결의에 의하여 결정되어야 합니다. ③어업권의 소멸로 인한 손실보상금은 어업권의 소멸로 손실을 입은 어촌계원들에게 공평하고 적정하게 분배되어야 합니다. ④따라서 어업권의 소멸로 인한 손실보상금의 분배에 관한 어촌계 총회의 결의 내용이 각 계원의 어업권 행사 내용, 어업 의존도, 계원이 보유하고 있는 어업 장비나 멸실된 어업 시설 등의 제반 사정을 참작한 손실의 정도에 비추어 볼 때 현저하게 불공정한 경우에는 그 결의는 무효가 됩니다. 즉, 어업권을 대신한 보상금의 분배방법은 어촌계의 총회 결의로 결정하여야 하는데, 그 내용이 ‘현저하게 불공정하다면’ 무효가 된다는 것입니다. 대법원이 ‘현저하게’ 라는 표현을 쓰는 경우, 아주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결의를 존중해 주겠다는 취지이니 매우 잘못된 경우라야 무효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에 더해서 이 사건과 관련된 또 다른 법리로는 ⑤어업권의 소멸로 인한 손실보상금을 어업권 행사자와 비행사자 사이에 균등하게 분배하기로 하는 어촌계의 총회결의가 있는 경우, 그 결의가 현저하게 불공정하여 무효인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그 어촌계 내부의 어업권 행사의 관행과 실태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법리들을 전제로 대법원은, 이 사건에서 B가 미역양식업을 주도적으로 행사하여 온 관행과 실태가 있는 이상 그에 따른 손실도 B가 주로 입게 되는데, 현실적으로 미역양식업과는 관련이 없는 나머지 계원들과 이해관계자인 B를 완전히 동일하게 평가하여 보상금을 똑같이 분배한 것은 B에 대해 현저하게 형평을 잃은 것으로 효력이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두 번째 여행을 마치며>이 사건에서 나머지 계원들이 마지막에 제시한 안(50:50 분배안)에 따르면 B 소속 개인별로 지급될 금액은 1억 2,352만 9,411원인데, 최종 결의에 의한 균등 분배액은 5,060만 2,409원으로 그 반에도 미치지 못하였습니다. 대법원은 이러한 금액의 차이까지 고려하여, 그동안 미역양식업을 꾸준히 해온 B에게 완전한 균등 분배를 하는 것은 별다른 기여도 하지 않은 나머지 계원들과의 관계에 비춰 너무 가혹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보상금을 어업권 행사자에게만 분배하여도 되는지 여부에 관해 대법원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경우, 모든 어촌계원이 그 행사자가 될 잠재적인 권리를 가지는 어촌계의 총유재산인 어업권이 소멸되었는데도 그 소멸의 대가로 지급된 보상금을 어업권을 실제로 행사한 어촌계원에게만 분배하고 비행사자에게는 차등분배조차 불허하기로 하는 결의는 현저하게 불공정하여 무효라고 판단하였습니다(대법원 1999. 7. 27. 선고 98다46167 판결).
따라서, 실제 어업권의 행사자와 비행사자가 공존하는 어촌계에서 어업권 소멸로 인한 보상금이 지급된 경우 (i)어업권 행사자로서는 비행사자도 행사자가 될 잠재적인 권리자였다는 점을, (ii)비행사자로서는 행사자가 비행사자에 비해 더 많은 재산상 이익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비행사자에게도 일정부분을 분배하고, 행사자에게는 비행사자보다 많이 분배해야 한다는 점 잊지 마세요.
출처 : 현대해양(
http://www.hdhy.co.kr)